연혁

1928

카톨릭 다이묘 교회 연혁

1887

E. 라게 신부, A. 러셀 신부(함께 파리 외국 선교회)와 전도사 2명이 후쿠오카에 와서 하시구쵸 (현 후쿠오카 추우오 우체국 부근)의 민가를 교회로 활용해 선교개시, 당시 후쿠오카시의 인구 4만5천명

라게 신부 3년간 후쿠오카에서 재류하면서 36명에게 세례줌 (처음 세례받은 사람은 이노우에 로쿠로우)

1896

현재 다이묘성당 위치에 붉은 벽돌 성당 완성

주임 사제 E. 베렐 신부(파리 외국 선교회) 출신의 파리 「성모의 승리」교회의 사제신도의 기부에 의한 동교회에서「승리의 성모」상이 기증된다. (현재 성당 입구 정면에 안치)

[붉은 벽돌 성당]

1927

후쿠오카 주교구 탄생해 다이묘 교회는 주교좌성당이 됨

초대주교 F. 치리주교(파리 외국 선교회) 착좌 주임 사제 죠리 신부 교회 내 제반 활동을 추진해 부인회 청년회 등 활동 활발하게 됨, 또한 후쿠오카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침, 큐슈 대학 교수와 친교를 도모하는 등 교회 외에서도 활약함

1930

이때 군국주의에 의한 사상통제가 심해져 어려운 상황을 맞게됨

성인 세례받는 사람 증가 및 나가사키로 이주신자를 포함 신자수 급증

1931

A. 브르톤 주교(파리 외국 선교회) 제2대 후쿠오카 주교에게 착좌

1932

교회 전도관에 「후쿠오카공교신학교」(코가미 학교) 설립(현 태성학원의 전신).

1935

이때 신자수가 천명을 넘음

1937

중일전쟁발발 다음해 국가총동원법 공포됨, 사상통제가 한층 강화됨, 프랑스인 선교사의 활동이 많이 제한됨.

[붉은 벽돌 성당 내부]

1938

붉은 벽돌 성당이 좁아지게 되어 목조성당 신축,사제관도 지음, 총공사비1만8천엔

붉은 벽돌 성당에서 제단과 「승리의 성모」상을 옮김

[목조 성당]

1941

일본 태평양전쟁에 돌입 후카보리주교 제3대 교구장으로 취임(주교착좌 1944년)

외국인 선교사의 대부분이 국내 각지에 억류, 다이묘 교회도 사제가 부재가 됨. 성당은 군부에 접수되어 히로시마 피복공장창고가 된다

1945

후쿠오카 대공습 태평양전쟁 종결

1948

첫 일본인 주임 사제 이토 세이지 신부 취임, 이때 교회를 방문하는 인원수 알려지지는 않고 세례받은 사람 다수

1949

성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일본 방문 400주년에 성인 성완 일본 방문, 하루 동안 다이묘 교회에 안치, 순례자 다수가 방문한다

그 이후, 비센시오바오로회, 레지오마리에 등 신도의 활동 왕성, 신자수증가
젊은 신부 차례차례 다이묘 교회의 부제로서 부임

[자비에르 탄생 400 주년]

젊은 신부가 차례로 영주 도시 교회의 助任 사제로 부임한다.

1962

제 2 바티칸 공회의개최(1965년 폐회) 다양한 쇄신이 결정된다

[1961 년경의 모습]

1968

노코노시마 순회교회에 신성당, 신도수 120

1969

히라타사부로 주교 제 4대 후쿠오카 교구장 착좌

공회의의 결정에 의해 미사가 새로운 식문(라틴어로부터 일본어로)으로 행해짐.

1984

붉은 벽돌 성당 해체, 구루메 성마리아 병원 부속 성당으로 부활

1986

목조 성당에서의 마지막 미사가 봉헌됨, 해체

[목조 성당 해체전]

[묵상, 성당 마지막 미사]

1986

현성당 카톨릭 센터 건축 헌당

[현성당 헌당식]

후쿠오카 교구의 주교좌성당으로서 여러 주교 미사, 교구행사, 연수회 등이 열리고 있다